“정수현 님이요? 어머! 선생님 아시는 분이세요?”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병동 간호사 선생님의 낭랑한 목소리에
심장은 더욱더 쿵쾅거리며 요동친다.
“아, 예. 친군데요… 이제 연락을 받아서 확인해 보려고요…”무언지 모를 민망함에 나지막하게 대답했다.“어쩌죠,
정수현 님 오늘 오전에 퇴원하셨는데…”이럴 수가 벌써 퇴원을, 혹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이라서 그냥 퇴원한
것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진다.“저기, 선생님 혹시 환자의 상태가…”“에이~선생님~!
환자 개인정보 보호 잘 알고 계시잖아요. 환자의 상태를 유선으로 알려드릴 수 없는 거 아시죠?”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스럽고 맑게 답변하는 병동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민망함을 덮어 주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아, 죄송합니다. 바쁘실 텐데. 감사합니다.”허겁지겁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한다. 통화를 마치고
거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이내 너털웃음을 짓는다‘. 우리병원에서 치료를 계속한다면 오가다 한번쯤은
만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래! 인연이라면 만나지겠지…’
벚꽃이 흰 눈처럼 흩날리고 저 멀리 보이는 병원 건물에 햇살이 반사 되어 눈부신 출근길. 귀에 꽂혀 있는
이어폰으로 들려지는 노래 한 가락을 흥얼거린다.“그대여, 그대여~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저기…”누군가 어깨를 뒤에서 톡톡 두드리며 말을 건넨다. 깜짝 놀라 이어폰을 허둥지둥 빼며 뒤를 돌아본다. 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흰 머리띠를 한 여인이 눈에 들어온다.
“혹시, 철민이…”“네? 네. 제 이름이 철민이는 맞는데 누군신지?”“어머! 나야 나! 정수현! 안 그래도 민정이가 너
여기서 근무한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네, 반갑다!”
“아! 정수현. 그래, 반갑다…”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게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나도 역시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알고 있던 정수현의 모습이 아니다. 머리띠는 내 기억속의 그 머리띠가 분명한데 더 이상
가녀린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환한 미소 짓던 그 모습이 얼굴에 어렴풋하게 비추지만 내 기억속의 그녀는 아니었다.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대화를 이어간다.
“이렇게 일찍 병원에 무슨 일이야?”
“오늘 외래진료 받는 날이거든. 아침 일찍 피검사가 있어서 일찍 왔지. 아이 낳고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암일 수 있다고 큰 병원 가보라더라. 그래서 여기로 왔지. 훗훗. 근데 난소에 조그마한 종양이 있어서 제거수술하고
얼마 전에 퇴원하고 오늘 외래 온 거야.”“그래, 다행이네.”
아, 이럴 수가. 나의 질문에 수줍게 대답하던 그녀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수다스러운 그녀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역시 첫사랑은 추억으로 남겨두었어야 했는데…나의 기억속의 그녀는 아스라이 사라져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