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의 길을 걸어온 지도 어언 32년차가 되면서 이제 나의 공직생활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전체 기간을 되돌아보는 일도 점점 잦아지는 것 같다. 만약 누가 나에게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이것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을 것 같다.
물론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말로 중요했던 변혁기의 한복판에서도 이렇다 할 기억이
\남지 않는가 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나 정경이 기억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는 등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제멋대로여서 그것을 그대로 내놓기가 좀 망설여질 뿐이다.
그러나 기억의 그런 유별난 특성을 감안해 준다면 도시지역의료보험 확대 시에 있었던 조그만
에피소드 하나 정도는 아쉬운 대로 얘기할 수도 있겠다.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그 해 3월,
전국적으로 17만명에 달하는 응시자들을 상대로 일시에 채용시험을 치는 매머드 공채 업무가
진행되었다. 워낙 손이 많이 필요한 업무라 입사 7년차에 불과했던 나도 전북 전주시의 어느
학교에서 치러지는 시험의 총괄 책임을 맡았다. 아침부터 밀려드는 1,000여명의 응시자들을
교실별로 배치하고 문제지와 답안지를 감독교사들에게 배포한 후 막 시험 시작 벨을 울리려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진행본부로 사용하는 교무실 문이 요란하게 열리더니 땀으로 범벅이
된 응시자 한 명이 들이닥쳤다. 서울에서 새벽 같이 전주로 내려왔는데 택시 운전사가 학교를
잘 몰라 엉뚱한 학교로 가는 바람에 늦게 되었다며 제발 시험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예령도 울리기 전이라 입실을 시키더라도 별 문제는 없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행 지침
상 입실 마감 시각은 이미 지나 있었다. 파견 나온 경찰관마저 나의 얼굴을 안타까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결국 나는 그를 입실시키지 못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하는 판단의
순간 나는 주어진 지침을 따르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체격이 매우 컸던 것
그리고 결정의 순간 그 큰 덩치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르 흐르던 것만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