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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자화상으로 만나는
남자의 평생

“시간이 흐르는 동안 렘브란트의 여러 자화상은 화가의 의식을 확장하는 수단이었다.
결국 화가는 내면의 대화를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늙고 홀로 남겨진 한 남자. 그는 위대한 회화의 탄생 순간, 자신과 소통하고 대면한다.”
- 마누엘 가서(Manuel Gasser), 1961. -

글·사진. 최병진(서울여자대학교 초빙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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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주인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하르먼스 판 레인 렘브란트(1606~1669)는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17세기 초에 위트레흐트에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이탈리아의 거장 카라바조의 빛의 표현에 관심을 가지고 주제에 집중할 수 있는 명암의 표현을 통해 공간을 확장하는 독창적 기법을 발전시켰다. 또한 여러 점의 초상화를 그리며 인물의 날카로운 시선, 화려한 명암, 유려한 붓 터치를 통해 인물의 내면적 심리를 효과적으로 다뤘다.
당시 렘브란트를 후원하던 권력자 오렌지 공 빌렘의 비서 후이겐스는 그가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 주목했고, 렘브란트는 주문자의 의도에 화답하듯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더욱 깊이 연구하며 표현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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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렘브란트, <스물두 살의 자화상>,
오크 패널에 유화, 22.6×18.7cm,
레이크스 미술관, 암스테르담,
1628~1629.

그러나 젊은 나이에 성공과 부를 거머쥔 렘브란트는 명성의 크기만큼이나 절망과 고독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그의 아이 셋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고, 넷째 아이는 살았으나 머지않아 그의 아내가 병으로 죽었다. 슬픈 가족사뿐만 아니라 수집을 좋아했던 탓에 여러 차례 파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그의 자화상에는 자신의 상황과는 사뭇 대조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남아있는 것이 없지만, 화가로서의 자기 자신은 결코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당시 사람들은 실제 모습보다 더 근사한 자신의 초상화를 원했다. 그러나 렘브란트가 그린 자화상들을 보면 진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늘날 레이크스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렘브란트의 자화상[그림1]은 그가 22살 때 그린 작품이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귀, 목에 묘사된 빛, 어둠 속에 숨어있는 얼굴은 신비로워 보이지만 동시에 해석하기 어려운 젊은이의 시선을 감추고 있다.

화가가 거울을 보고 자신의 모습을 관찰하던 순간이 반영된 이 그림에는 인상을 강조하기 위해 과감하고 간결한 터치를 활용한 빛과 세밀하고 정교한 선들이 대조를 이루며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렘브란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는 감정을 회화적 표현을 선택하고 고안했던 것이다. 그는 표현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바탕으로 우울함과 즐거움, 내면과 외면, 고요한 영혼의 상태와 격정적 상태의 대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그림에 대한 젊은 예술가의 의지가 반영된 것처럼 섬세한 선과 활력이 넘치는 굵고 빠른 붓 터치를 통해 자신의 독창적 표현의 자신감을 보여주며, 어둠 속에 감춰진 신비로운 시선을 통해 미래에 대한 탐색과 자신의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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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렘브란트, <사도 바울로 분장한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91×77cm,
레이크스 미술관, 암스테르담, 1661.

반면 같은 박물관에서 남아있는 나이가 들고 성숙한 그의 자화상[그림2]은 노화가의 인생 역정이 담긴 깊숙이 패여 있는 주름과 고민이 담겨있다. 가까이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겹겹이 쌓인 물감의 균열과 서로 다른 속도의 붓 터치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멀리서 볼 때 만들어내는 인간 존재에 대한 묵직한 감정의 무게가 표현되어,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시적(詩的)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의 자화상들은 인생의 종착역으로 가는 한 인간의 거짓 없는 솔직한 자기 고백이며 증언이다. 그래서 비록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쓸쓸한 모습일지라도 털 한 올 빠뜨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그래서 그의 자화상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고, 더 깊이 있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