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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cal, TMI

의료지원 호흡기내과 이상철 교수

흰색 가운을 입은 의료진 목에 걸쳐진 청진기, 의사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우리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의사는 청진기를 이용해 환자의 심장, 폐, 복부, 심지어 혈관의 이상을 판단한다. 청진기가 없던 시절에는 환자의 가슴에 직접 귀를 대고 진찰을 했다. 청진기의 발명부터 비대면 청진기 개발까지, 청진기의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자.

정리. 편집실 참고. <발명과 혁신으로 읽는 하루 10분 세계사>, <1%를 위한 상식백과>

청진기 발명 이전,
직접 청진에서 타진으로

청진기는 그리스어로 가슴을 의미하는 ‘스테토스(stethos)’에서 유래되었다. 청진(聽診)은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 의사들이 사용하던 진찰법으로, 청진기가 개발되기 전에는 환자의 가슴에 귀를 대고 폐나 심장에서 나는 소리를 듣는 ‘직접 청진’ 뿐이었다.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청진은 필수적이나 뚱뚱한 환자는 청진이 어려웠고, 여성의 경우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도 높았다. 게다가 청결하지 못한 환자를 청진하면서 의사에게 기생충이 옮겨질 위험도 있었다.
이에 청진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타진(打診)인데, 환자의 신체를 두드려서 진찰하는 것이었다. 의사는 환자의 가슴, 등, 관절 따위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나 보이는 반응으로 병의 증세를 살폈다. 타진은 1761년 오스트라이의 외과 의사인 아우엔브루거(Leopold Auenbrugger)가 <새로운 발명> 이라는 책에서 선보인 것으로, 그의 부친이 술통을 두들겨 가며 통 안에 남은 술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눈여겨보았던 것에서 발견했다. 아우엔브루거의 타진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파리의 샤리테 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근무하던 코르비사르 데마레(Jean-Nicolas Corvisart-Desmarets)였다. 당시에 그는 약 20년 동안 타진법을 진료에 활용했으며, 환자에 대한 진찰 소견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해부학적 변화를 예측하는 실력을 보였다. 그는 화잔를 진찰하거나 시체를 부검하면서 타진 이론을 열심히 설명했으며, 그의 회진에는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뚱뚱한 환자 덕분에
탄생한 청진기

청진기는 1816년, 프랑스 의사이자 흉부희학 선구자인 르네 라에네크가 발명했다. 어느 날 그에게 심장이 좋지 못한 여성의 환자가 찾아왔는데, 여자인 데다 비만인 그녀를 보고 르네 라에네크는 타진으로 정확한 청진을 할 수 없어 망설였다. 의사로서 환자를 되돌려 보낼 수 없었던 그는 종이 한 묶음을 말아서 실린더에 넣고 한 쪽은 귀에 대어 누르고, 다른 한 쪽은 환자의 가슴에 댔다. 그런데, 환자의 심장 소리가 타진했을 때보다 더 또렷하게 들렸다. 그는 당시의 일을 “나는 환자의 심장박동을 훨씬 분명하게 듣게 되어서 놀람과 동시에 기뻤다. 만약 내가 귀를 환자의 가슴에 직접 갖다 댔다면, 심장박동을 그 정도로 분명하게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기록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이후 라에네크는 제대로 된 청진기를 만드는 데 몰입했다. 최초의 청진기는 공책을 단단하게 말아 원통을 만든 후 풀 먹인 종이와 실로 양 끝을 봉한 것이었다. 라에네크는 처음에 그 기구를 ‘원통(cylinder)’이라 부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청진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와 함께 라에네크는 청진기와 같은 중간 매개체를 활용하여 환자를 진찰하는 방법을 ‘간접 청진 (mediate auscultation)’으로 명명했다. 라에네크는 이후에도 몇몇 실험을 통해 청진기를 개량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을 추진해 1819년, 길이 25센티미터, 지름 2.5센티미터인 속이 빈 나무 관으로 청진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청진기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됐으며, 귀까지 연결된 고무관을 통해 양쪽 귀 모두를 사용할 수 있는 쌍이식 청진기가 1850년에 등장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근대적인 청진기의 원형이다.
청진기는 단기간에 대중화된 최초의 진단기구로 평가되고 있다. 청진기에서 시작된 의료용 진단 기구는 의학과 기술의 거듭된 혁신으로 X선,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첨단 장치로 발전했다. 최근에는 무선 청진기까지 개발되었는데, 접촉을 최소화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CT나 X-ray 촬영을 대신하여 심폐음으로 코로나19 여부를 확인할 수 있어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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