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iness of Life
일산병원이 전하는 인생의 행복

조선왕조 건강실록

전하의 손톱
‘매핵인’으로 다스리다

왕의 손톱을 다듬는 일은 늘 최고참 의녀의 일이었다. 손톱의 상태는 왕의 건강과 영양 상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였을 뿐만 아니라 손끝 발끝 하나하나까지도 소중한 옥체의 일부로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왕실 일원 모두의 의무였다.

정리. 편집실  참고도서.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 건강실록

퉁퉁 부어 오른 인조의 새끼손가락

왕의 손톱을 다듬는다는 것은 어쩌면 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세밀한 부분을 보필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내의원 안에서도 가장 경험이 많은 최고참 의녀가 맡곤 했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최고참 의녀의 눈이 나이보다 빠르게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마도 내의원 어의들 몰래 밤마다 작은 호롱불 하나에 의지한 채 의서를 읽고 베끼고 하던 버릇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최고참 의녀는 잔뜩 눈에 힘을 주고 긴장한 채 인조의 손톱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정교한 손톱깎이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왕의 손톱은 머리카락이나 수염 등을 정리하는 작은 가위 혹은 작은 칼과 같은 도구로 다듬었다. 그만큼 한 치의 실수라도 생기면 왕의 손가락이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눈 깜빡 하는 사이에 인조의 왼쪽 새끼손가락의 손톱끝이 반쯤 부러진 채로 상처가 나고 말았다. 다행이 피가 흐를 정도는 아니었으나, 2~3일이 지나자 손가락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부어올랐다. 매일 아침 손을 씻기 위해 대야에 손을 담글 때마다 인조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인조의 곪아가는 손톱이 빠지지 않게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내의원에서는 대지증(代指症), 즉 생인손을 앓는 인조를 위해 황납고(黃蠟膏)라는 외용 연고와 상회수(桑灰水)라는 씻는 처방을 지어 올렸다.
첫 번째로 인조가 처방 받은 황납고는 겨울에 손발이 터서 아픈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참기름을 약한 불에 끓어오르게 달이다가 황랍 한 덩어리를 넣은 다음 연분과 오배자 가루를 각각 조금씩 넣고 자줏빛이 나도록 졸이는 방법으로 제조하는데 인조의 황납고는 여기에 매핵인(梅核仁), 즉 매실의 씨와 유향(乳香)을 더 첨가했다. 열을 해소하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작용을 하는 매핵인과 부종을 내려주고 새살을 돋게 하는 유향을 더 첨가한 것이다.
두 번째로 상회수, 즉 뽕나무를 태운 잿물에 상처를 자주 담가 씻어주라고 했는데, 뽕나무 잿물은 특유의 다공성 구조로 진물을 빨아들이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상처가 부은 것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는 피마자(蓖麻子)의 잎을 더 첨가했다.

걸음조차 힘들었던 현종의 발가락

발가락과 발톱에 생긴 상처로 고통 받은 왕도 있었다. 현종은 18세로 왕이 되던 즉위년부터 발가락 부분의 불편감이 나타났다고 한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붉은 기운이 돌면서 걷는 것도 평소 같지 않던 왕을 걱정하는 신하들은 의관을 불러들였다. 현종은 대단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했지만, 발가락의 환처는 10년이 넘는 임기내내 현종을 괴롭히는 증상으로 자라났다.
처음에는 붉은 기운이 도는 것으로 시작된 발가락의 습창(濕瘡)은 3일 후 심한 가려움 호소하기에 이르렀고, 내의원에서는 창이자(蒼耳子)의 줄기와 잎을 태운 재를 식초로 개어 붙이는 외용제를 지어 올렸다. 현종은 오른쪽 발가락뿐만 아니라 왼쪽 발가락에도 통증이 심했다.
이에 내의원은 왼쪽 발가락에는 씨와 껍질을 제거하지 않은 오매(烏梅)를 짓이겨서 환처를 싸놓는 처방을 내렸다. 하지만 신하들의 걱정과 정성 담긴 치료에도 불구하고 현종의 환처는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0여 일이 지난 7월 18일과 19일 이틀간, 현종은 발이 불편하여 왕실 장례의식에 제대로 참석할 수 없었다. 발이 불편하여 장례의식을 할 수 없었다는 기록은 7월 28일, 8월 1일, 8월 4일에도 계속 이어졌다.

손톱, 발톱의 명약, 매핵인

인조와 현종이 공통적으로 처방받은 약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매실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매실의 씨앗 부분으로, 일반적으로는 약용하지 않는 부분이다.
건강식품으로도 애용되는 매실은 장미과인 매실나무의 과실을 말하는데, 생매실보다는 오매를 더 많이 활용한다. 오매는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미성숙한 매실을 볏짚이나 왕겨를 태우는 매연 속에서 훈증하여 흑색이 될 때까지 건조하여 만든다. 인조의 처방에는 황납고라는 외용 처방에 첨가하는 약재로 매핵인, 즉 오매의 씨가 추가되었고, 현종은 오매 단독으로 껍질과 씨를 제거하지 않은 채로 짓이겨 싸매는 처방을 받았으니 이 또한 오매의 씨앗이 포함된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매실의 씨에는 아미그달린이라는 독성 성분이 들어 있어 제거하여 쓰는 것이 권장된다는 점이다. 매실을 오매로 만드는 과정도 이러한 독성을 완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보인다. 버리는 부분으로만 생각했던 매실의 씨앗이 손발톱의 염증을 가라앉히는 명약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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