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R of Life
BLUE

IH 진료실 ①

마음의 상처는 아물면
단단해지기 마련,
보듬어 주세요!

불의의 사고로 극도의 스트레스가 발생하는 것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한다. 머릿속으로는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아 마음은 물론 신체적으로도 다양한 증상을 겪게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코로나19확진 환자는 물론, 모두가 마음의 상처와 우울감을 쉽게 느끼게 되는데,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잘 헤아리고 보듬는 것이 중요하다.

글. 정신건강의학과 양소영 교수

코로나+블루=코로나블루

최근 ‘코로나블루’라는 이야기가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코로나블루는 코로나(coronavirus, 코로나바이러스)와 블루(blue, 우울감)가 합쳐진 말로,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감염 위기상황에서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은 신체적인 것, 경제적인 것 외에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기인한다. 감염 자체에 대한 걱정, 공포와 더불어 장기화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활동이 제약되면서 답답함을 느끼거나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지 못해 우울해지고 무력해지기도 한다.
외부적인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써 불안, 공포, 짜증 등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불안은 우리를 주의 깊게 행동하게 함으로써 위험에서 보호하는 순기능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불안 자체에 대해 걱정하기보다는 충분히 불안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잘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상적인 불안과 우울은 규칙적인 수면 및 운동 등의 활동량 유지, 친밀한 사람들과의 교류 등으로 호전이 될 수 있으나, 과도한 두려움과 공포감에 압도되고 있거나 특히 불면증이 지속되고 불안으로 인해 일상생활 유지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면 정신건강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재난을 겪은 후 우리 몸에 나타나는 스트레스 반응

삼풍백화점이나 세월호와 같은 큰 사고나 지진, 태풍 등과 같은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개인 또는 지역사회에 심리적인 충격을 일으킨다. 감염병으로 인한 재난 역시 그렇다. 병을 직접 겪은 환자와 주변인뿐만 아니라 불안이 번져나간 사회 전반에 걸쳐 정신적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2003년 사스 발병 후 홍콩에서 시행된 추적 조사에서 생존자를 대상으로 관찰했을 때, 41개월 이후에도 40%의 생존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우울증, 만성 통증 등의 정신장애로 이환되기도 했다. 신체적인 회복보다 정신적인 회복이 더욱더 오래 걸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이러한 다양한 정서적 어려움은 격리 절차나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 부재, 일상에서 자신의 의무와 역할 수행의 중단, 가족과 지인의 접촉 제한, 의학적 처치에 대한 불만족감, 불편한 신체 증상, 제한된 공간과 활동 범위 등에 의해 증가될 수 있다.
사고, 자연재해, 심각한 감염병과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충격적 사건을 경험하게 된 개인은 첫 48시간 동안 본능적인 싸움/도주 반응을 보이는 쇼크 단계에 접어든다. 이때 생존자는 멍하고 느린 반응, 퇴행 행동,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등의 강한 정서적 반응, 또는 전신 떨림, 어지러움이나 마비 증상, 소변 조절이 안 되는 등의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첫 1주까지는 노출, 반응 단계로 생존자의 탄력적인 행동, 소진 행동이 발생한다. 1개월까지는 회복 단계로 생존자가 사건에 대해 애도하고 재평가를 하게 되는 기간이며, 사건에 대한 의도하지 않은 침습적 회상이 반복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슬픔, 외로움, 죄책감 또는 분노를 느끼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다. 이후 2년까지는 통합 단계로 사건에 대한 회상의 빈도가 감소하고 이에 따라 스트레스 반응도 줄어들며 생존자는 서서히 외상의 경험을 개인의 삶 속으로 통합하게 된다.

성숙한 삶의 밑거름이 되는 외상 후 성장

살면서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 사람은 없다. 앞서 이야기한 외상 후 반응은 비교적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이후에 대해 연구된 결과이지만, 모든 사람은 크건 작건 ‘트라우마’로 표현되는 정신적인 외상을 겪으며 다양한 정도의 신체적·심리적 반응을 보이고, 이를 극복해 나간다. 트라우마 반응이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새로운 일상으로의 복귀가 좌절된 경우에는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반면 잘 극복한 사람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외상 후 성장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
외상 후 성장을 이룬 사람은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준 주변인들로 인해 그동안의 인간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이전보다 더 적극적이고 신뢰감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흥미가 생기고 어떤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색하기도 하며 필요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게 된다. 또, 어려움을 극복해낸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며 다른 어려움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기효능감을 얻게 된다. 삶의 가치와 매일의 일상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을 이전보다 더 잘 느끼게 되기도 하고, 성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통합의 단계에 이르면 외상의 경험은 개인의 삶의 줄기 속 한 부분으로 들어온다. 트라우마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지겠지만, 그 변화는 심리적으로는 긍정적인 방향이 될 수 있다. 결국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힘들었던 경험이 성숙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만약 최근의 감염재난 상황으로 지금 고통받고 있다면 다른 수많은 이들이 먼저 경험하고 증언해 준 이런 성장의 기록들이 희망이 되어줄지 모르겠다. 터널 끝에서는 반드시 빛이 보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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