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밸런스

진료실 단상

STETHOSCOPE IN ASIA : KOREA
외과 이진호 교수

간, 담도, 췌장 질환 수술 명의인 이진호 교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과학 교실 임상조교수를 거쳐 현재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암센터에서 간담췌암 수술과 복강경 수술, 로봇수술 및 간이식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닥터 홀이 남긴
<조선회상>
책 속에서 의사의 삶을
다시 생각하다
외과 이진호 교수

많은 의사가 생과 사의 경계에서 환자를 만난다. 그 과정을 숱하게 겪다 보면 삶과 죽음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그때마다 자신의 소명을 되돌아보는 과정은 필요하다.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 이진호 교수의 책장에 아직 머무르고 있는 이유다.

글. 정라희  사진. 남윤중

천천히 자신의 길을 가다

이진호 교수는 자신을 두고 “조금 느린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공대를 다니다 뒤늦게 의대로 진로를 변경했고, 군 제대 후에 지인의 부탁으로 한동안 일반의로 일하다 동기보다 몇 년후에 전문의 과정을 밟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남들과 비슷할 때에 시작하고 마쳐야 한다는 강박감이 심한 한국 사회에서 이진호 교수의 선택은 색다른 지점이 있다. 그러나 돌아보면 자신의 결정이 인생을 이끌어온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조금 늦은 시작이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는 교수로 자리 잡아 여러 환자의 외과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외과 전문의가 되고, 결혼도 남들이 말하는 적령기를 넘겨서 했어요. 제 경험 때문인지 나이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지금이라도 시작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길이 열릴 거라고 믿어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많았던 만큼, 자신 앞에 놓인 순간에 최선을 다해왔다. 어린 시절, 해외로 의료봉사를 나갈 꿈을 꾸었던 기억이 그를 외과로 이끌었다. 많은 진료과 중에서도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고되다는 외과. 이진호 교수는 그 안에서도 까다롭기로 알려진 간 담췌외과 분야를 택했다. 간과 담도, 췌장은 후복강에 위치해 진단은 물론 수술도 어렵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쳐도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고령 환자가 많아 회복 중 변수가 특히 많은 편이기도 하다. 수술 경과가 좋지 않은 환자가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기도 한다. 의사의 실력을 넘어선 불가항력적인 상황들이 펼쳐질 때면, 자연스레 신 앞에 겸손해진다.

오래전 이 땅에 온 의사의 기록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자주 접하다 보면 자기반성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외과 의사로서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은 있을터.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하는 만남에서는 거듭 자신을 돌아보며 좀 더 겸손해지려 한다. 이같은 마음가짐은 한창수련을 받던 인턴 시절에 읽은 한 권의 책이 영향을 미쳤다. 바로 한국에 의료 선교사로 건너와 일생을 보낸 셔우드 홀의 <조선회상>이다. 조선시대 말부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선에서의 삶을 담았다. “제가 인턴생활을 할 때는 새벽 수술이 있을 때 수술실 밖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했어요. 긴급한 호출에 즉 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였죠. 이 책은 인턴 시절에 처음 읽었는데, 책 속에 기록된 선교사들의 당시 삶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셔우드 홀의 부모인 제임스 홀과 로제타 홀 역시 의사였고 이들 일가는 당시 조선의 의료환경 개선에 공헌했다. 셔우드 홀은 폐결핵 퇴치를 위해 한국 최초로 결핵요양원을 설립했고, 결핵 치료 재원 마련을 위해 크리스마스 실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 시절과 비교하면 로봇수술이 보편화된 요즘의 의료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질병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진호 교수는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환자를 보려 한다.
수술의 내공을 기르듯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훈련을 매일 이어가리라 다짐하면서. 지난날, 수련을 받으며 틈 틈이 읽었던 <조선회상> 책자 한 귀퉁이에 적힌 ‘이진호’ 라는 이름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