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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살림의 비밀
숫자로 진료를 번역하는 사람들

기획예산부 원가분석팀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어쩌면 큰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따끈한 빵이 나오듯 병원에서도 수많은 진료와 수술이 이루어진다. 이 거대한 살림살이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다면 기획예산부 원가분석팀 최유정 팀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편집실 사진 송인호

병원을 운영하는 일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를 관리하는 일 과도 같다. 매일같이 환자가 오가고, 진료와 수술이 이어지며, 수많은 장비와 인력이 동시에 움직인다. 이 복잡한 흐름속에서 ‘얼마를 쓰고 있는지’는 비교적 쉽게 보이지만, ‘왜 그만큼 써야 하는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기획예산부 원가분석팀 최유정 팀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병원 살림을 설명하는 사람이다. 원가분석팀이라는 이름 때문에 종종 ‘깐깐한 감시자’를 떠올리는 시선도 있지만, 최 팀장은 그 이미지를 조심스럽게 바로잡는다.

“저희는 비용을 줄이라고 말하는 팀이 아니라, 현장에서 필요한 이야기를 숫자로 증명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진료 현장의 목소리가 데이터 속에 묻히지 않도록 돕는 조력자에 더 가깝죠.”

병원 곳곳에서 묵묵히 이어지는 진료와 행정, 관리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으려면 감각적인 설명보다 근거 있는 숫자가 필요하다. 원가분석팀은 바로 그 숫자를 만드는 곳이다.

‘비용’이 아니라 ‘원가’를 본다는 것

병원에서 ‘비용’과 ‘원가’는 자주 혼용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비용이 ‘이달에 얼마가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라면, 원가는 ‘그 돈이 어디에, 어떤 활동을 위해 쓰였는지’를 설명하는 구조다.

예를 들어 병원의 전기료가 전년 대비 크게 늘었다고 해보자. 비용의 관점에서는 ‘전기료가 많이 나왔으니 절감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그러나 원가는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 질문을 던진다. 이 전기가 수술실의 고가 의료 장비를 돌리는 데 쓰였는지, 환자 대기 공간을 쾌적하게 유지하기 위해 쓰였는지, 아니면 새로운 진료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과정에서 쓰였는지를 구분해본다. 이 차이에 따라 병원의 판단이 완전히 달라진다. 단순한 절약의 대상이 아니라, 병원이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최유정 팀장은 원가계산 시스템을 ‘병원용 가계부’라고 설명한다. 다만 이 가계부는 단순히 수입과 지출을 적는 수준을 넘어선다. 약값처럼 특정 진료와 바로 연결되는 비용뿐 아니라, 전기료·냉난방비·시설관리비·전산 유지비·행정 인력 인건비처럼 주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간접비까지 함께 다룬다. 병원 살림에서 이 간접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병원을 프리미엄 빵집으로 본다면

원가분석팀의 이야기가 쉽게 와닿는 이유 중 하나는, 병원의 복잡한 구조를 일상의 비유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최 팀장은 병원을 ‘프리미엄 베이커리’에 자주 비유한다. 빵집에서 사용하는 비용에는 밀가루나 딸기 같은 재료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븐 전기료, 가게 월세, 냉난방비, 직원 월급 같은 비용이 함께 들어간다. 문제는 이 비용들이 특정 빵 하나만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빵과 케이크, 타르트와 쿠키 모두가 같은 공간에서 설비와 인력을 공유한다.

만약 식빵에는 재료비만 계산하고 월세와 전기료를 하나도 붙이지 않는다면, 식빵은 엄청난 효자 상품처럼 보일 것이다. 반대로 케이크에만 모든 간접비를 몰아주면, 케이크는 팔수록 손해를 보는 문제 메뉴로 인식될 수 있다. 실제와는 전혀 다른 판단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병원도 다르지 않다. 진료와 수술, 검사와 입원은 모두 병원이라는 공간과 시스템을 공유한다. 그래서 간접비를 어떻게 나누느냐는 단순한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진료의 가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 원가분석팀은 명확한 기준을 세운다. 전기료와 냉난방비는 부서 면적이나 장비 가동 시간으로, 시설관리비와 청소비는 병상 수나 면적에 따라, 행정부서 인건비는 환자수나 처방 건수를 기준으로 배분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핵심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활동기준 원가계산, ABC(Activity-Based Costing)다.

“ABC는 환자 수처럼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의료 활동이 이루어졌는지를 기준으로 비용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자원을 사용했는지를 보는 거죠.”

활동을 기준으로 한 ‘정직한 계산’

ABC 방식에서 핵심은 ‘활동’이다. 단순히 진료 건수나 환자 수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수술실 가동 시간, 장비 사용 횟수, 의료진이 환자에게 투입한 시간과 노력 등 실제 의료 행위를 기준으로 비용을 배분한다. 이는 기존 방식보다 훨씬 정직한 계산법이다.

과거의 방식이 ‘오늘 빵을 몇 개 팔았는가’를 봤다면, ABC는 ‘그 빵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과정과 노력이 들어갔는가’를 본다. 병원으로 치면, 환자마다 다른 진료의 깊이와 투입 자원에 따라 전혀 다른 원가구조를 갖게 된다. 이렇게 계산된 원가는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점수를 매기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병원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하는 돋보기에 가깝다. 어떤 진료에 자원이 집중되고 있는지, 어떤 과정에서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더욱 명확하게 보여준다. 재무회계가 외부 보고와 결산을 위한 ‘성적표’라면, ABC 원가는 병원 내부 운영을 위한 ‘전략 지도’다. 연말에 ‘얼마를 벌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디에 자원을 써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만든다.

병원을 넘어 정책으로 이어지는 숫자

일산병원의 원가 데이터는 병원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민건강보험 보험자병원이라는 특성상, 이 숫자들은 국가 보건의료 정책의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된다. 건강보험 수가를 조정할 때 “이 진료는 실제로 이만큼의 비용이 듭니다”라고 설명하는 기준이 되고, 소아과나 응급의료처럼 수익은 낮지만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필수의료 영역에 필요한 지원 규모를 제시해 설득하는 자료가 된다. 병원의 숫자가 의료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쓰이는 셈이다. 최유정 팀장은 원가분석팀의 역할을 이렇게 정리한다.

“원가계산은 돈을 아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병원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이야기죠. 저희는 더 좋은 진료를 할 수 있도록 길을 비춰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보이지 않던 병원 살림은 그렇게 숫자가 되고, 그 숫자는 다시 진료와 정책, 병원의 내일로 이어진다. 원가분석팀은 오늘도 그 연결고리를 묵묵히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