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진짜 나의 사용설명서

알고리즘 시대에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삶은 거창한 결심보다 사소한 습관에서 방향이 결정된다. 하지만 알고리즘과 플랫폼이 우리의 시선과 시간을 경쟁적으로 차지하는 시대에는 바른 생활조차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자유는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아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고 스스로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오늘의 작은 선택이 삶의 질서를 어떻게 바꾸는지 살펴본다.

구승준(번역가·칼럼니스트)

책상 위에 둔 컵 하나를 며칠 치우지 않았을 뿐인데, 방의 공기는 이상하게 달라진다. 그다음에는 영수증, 충전기 전선, 벗어둔 옷, 읽다 만 책이 따라붙는다. 질서는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무질서는 늘 사소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오늘의 산책을 내일로 미루고, 내일의 독서를 주말로 미루고, 주말의 정돈을 다음 달로 넘기다 보면 어느새 삶 전체가 임시 보관함처럼 변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은 닫힌계의 엔트로피, 곧 무질서도가 증가한다고 말한다. 물론 비유일 뿐이나, 일상에는 섬뜩할 만큼 들어맞는다.

방치된 정원은 꽃밭이 되지 않는다. 잡초가 무성한 밭이 된다. 방치된 몸은 단단해지지 않는다.

무거워진다. 방치된 정신은 자유로워지지 않는다. 흐려진다. 삶의 격조란 결국 이 흐트러짐을 알아차리고, 매일 조금씩 질서를 다시 세우는 능력이다.

알고리즘 시대의 욕망은 내 욕망인가

오늘날 바른 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인간이 예전보다 나약해져서가 아니다. 인간의 약점을 겨냥하는 산업이 예전보다 훨씬 정교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유혹에는 술집, 담배, 도박장처럼 공간과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혹은 손바닥 안에 들어와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쇼츠, 온라인 쇼핑 앱은 강제로 명령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내가 원해서 본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데 있다. 내가 다음 영상을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이전에 내가 멈춘 시간, 다시 본 장면, 좋아요를 누른 습관, 몇 초 만에 넘겼는지의 기록이 나보다 먼저 나의 다음 욕망을 계산한 것인가. 유튜브의 추천 시스템은 시청 지속 시간과 반응을 중요한 신호로 삼아 다음 콘텐츠를 배열한다. 알고리즘은 내 취향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 취향이 어느 방향으로 더 오래 붙잡힐 수 있는지도 함께 실험한다. 그러니 알고리즘 시대의 욕망은 순수하게 ‘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나의 기질과 플랫폼의 계산이 공동 생산한 욕망에 가깝다(구글 연구팀, 「유튜브 추천을 위한 심층신경망」, 2016; 유튜브 공식 블로그, 「유튜브 추천 시스템에 관하여」, 2021).

담배, 술, 야식, 쇼핑, 쇼트폼은 서로 다른 물건처럼 보이지만 구조는 비슷하다. 모두 즉각적인 보상을 준다. 기다릴 필요가 없다. 노력할 필요도 없다. 중독성 물질은 뇌의 도파민 보상 회로를 강하게 자극하고, 뇌는 그 물질과 관련된 단서에 반복적으로 반응하도록 학습된다. 즉, 중독은 단순히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특정 자극에 뇌가 길들여지는 과정이다(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 「약물과 뇌」, 2020).

흡연도 마찬가지다. 담배 한 대는 잠깐 안정감을 주는 듯하지만, 금연한 사람들은 계속 흡연한 사람들보다 우울, 불안, 스트레스가 줄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경향을 보였다(영국의학저널, 「금연과 정신건강 변화에 관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 2014). 술도 하루 동안 쌓인 피로를 풀어주는 느슨한 위로처럼 포장되지만, 대규모 질병부담 연구는 건강 손실을 최소화하는 음주 수준이 사실상 ‘0’에 가깝다고 분석했다(더 랜싯(The Lancet), 「195개 국가와 지역의 알코올 사용 및 질병부담 연구」, 2018). 잠들기 전 화면을 보는 습관도 사소하지 않다. 밤에 발광 전자책을 읽은 사람들은 종이책을 읽은 사람들보다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고, 생체시계가 늦춰지며, 다음 날 아침 각성도가 떨어졌다(미국 국립과학원회보, 「야간 발광 전자책 사용이 수면·생체리듬·다음 날 각성도에 미치는 영향」, 2015).

그러므로 문제는 단순한 나태가 아니다. 주권의 문제다. 내가 내 몸을 쓰고 있는가, 아니면 시장이 내 몸을 쓰고 있는가. 내가 내 주의력을 배분하고 있는가, 아니면 알고리즘이 내 주의력을 배분하고 있는가.

방종은 자유가 아니라
호출에 응답하는 상태다

우리는 흔히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먹고 싶을 때 먹고, 보고 싶을 때 보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사고 싶을 때 사는 삶을 자유롭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반대다. 먹고 싶지 않은데도 먹어야 하고, 피곤한데도 화면을 넘겨야 하며, 불안하면 사야 하고, 외로우면 마셔야 하는 상태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충동의 호출에 성실히 응답하는 상태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노예 출신이었다. 역설적으로 몸의 자유를 박탈당한 자리에서 정신의 자유를 가장 엄격하게 사유했다. 핵심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달린 것과 달리지 않은 것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날씨, 타인의 평가, 시대의 운, 질병과 사건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을 먹을지, 언제 잘지, 분노에 어떻게 반응할지,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룰지 말지는 적어도 일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스토아 철학의 요점은 감정을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내 바깥의 사건이 내 안의 질서까지 마음대로 흔들게 두지 말자는 말이다. 알림과 광고, 피로와 욕망이 내 하루의 운전대를 잡게 두지 않는 기술이다.

의지력보다 중요한 것은 설계다

많은 사람이 바른 생활을 결심할 때 의지력을 떠올린다. “내일부터 독하게 마음먹겠다.” “이번에는 반드시 끊겠다.” “이제부터 달라지겠다.” 그러나 인간은 결심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결심은 불꽃에 가깝다. 잠깐 밝게 빛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난방 시스템이다. 습관은 며칠 독하게 참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단서에 행동을 반복적으로 붙일 때 몸에 새겨진다. 새 행동이 습관으로 장착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66일이었고, 개인과 행동에 따라 18일에서 254일까지 큰 차이를 보였다(필리파 랠리 외, 「현실 세계에서 습관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유럽사회심리학저널>, 2010).

행동 계획이 중요하다. 막연히 “술을 줄이겠다”, “휴대폰을 덜 보겠다”고 결심하는 것보다 “만약 A가 일어나면 B를 한다”는 식으로 상황과 행동을 묶어두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이는 ‘실행 의도’라고 불리는 전략으로, 목표를 특정 상황에서 자동으로 작동하는 행동 절차로 바꾸는 방식이다(피터 골비처, 「실행 의도」, 『미국심리학자』, 1999).

“밤에 휴대폰을 덜 보겠다”는 약하다. “밤 11시가 되면 휴대폰을 거실 충전기에 꽂고 침실에는 가져가지 않는다”가 강하다. “술을 줄이겠다”는 약하다. “퇴근 후 스트레스를 받으면 편의점에서 맥주 대신 탄산수를 사고 20분간 걷는다”가 강하다. “담배를 참겠다”는 약하다. “흡연 욕구가 올라오면 바로 피우지 않고 타이머 3분을 켠 뒤 물을 마신다”가 강하다.

바른 생활은 욕망을 정면으로 때려눕히는 영웅주의가 아니다. 욕망이 자동으로 가던 길목을 미리 바꾸어두는 지적인 우회로다. 중요한 것은 “나는 강한 사람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얼마나 줄여놓았는가”이다. 좋은 생활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배치의 문제이고, 품격은 타고난 절제력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구조에서 나온다.

자극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

여기서 격조라는 말의 의미도 달라진다. 우리는 격조를 흔히 비싼 취향과 혼동한다. 좋은 옷, 좋은 식당,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음악을 떠올리지만 더 깊은 격조는 자기 조율의 수준에서 나온다. 혼자 있을 때 무너지지 않는 사람, 피곤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함부로 방치하지 않는 사람, 아무도 보지 않는 아침과 밤 시간을 정돈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깊이가 있다.

바른 생활은 자극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아침에 마시는 물 한 잔, 정해진 시간에 펴는 책, 밤이 깊기 전에 화면을 덮는 손짓, 유혹을 피해 걷는 20분, 내일을 위해 침대를 정돈하는 행위. 이 모든 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다. 그것들은 느슨해진 삶의 엔트로피를 낮추는 작은 의식이며, 자신에게 보내는 가장 조용한 충성이다.

방종은 자유가 아니다. 방종은 방향을 잃은 에너지의 낭비다. 진짜 자유는 내가 나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 자유는 대개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온다. 정돈된 방, 맑은 아침, 가벼운 몸, 흔들리지 않는 눈빛, 해야 할 일을 해낸 사람만이 누리는 낮고 깊은 평온. 이보다 더 지적이고 품격 있는 저항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