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1

의료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병원의 새로운 기준

오성진 기획조정실장

디지털 전환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병원의 생존 전략이다. 특히 최근 정부 주도로 추진되는 ‘의료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은 기존의 의료 AI를 넘어 병원 운영 전반을 재설계하는 수준의 변화를 예고한다. 일산병원은 이 거대한 전환의 중심에서 기술을 검증하고 기준을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오성진 기획조정실장을 만나 디지털 AI 기반 스마트병원이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며, 병원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들어봤다.

정리 편집실 사진 송인호

도구를 넘어 병원의 사고 체계를 바꾸는 AI

오성진 기획조정실장은 이번 사업의 본질을 ‘기능 추가’가 아닌 ‘구조 전환’으로 정의했다. 기존의 의료 AI가 특정 기능, 즉 영상 판독이나 기록 요약에 집중된 ‘단일 목적 시스템’이었다면, 의료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은 병원 전체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범용 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이제 AI는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해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환자의 증상·병력·검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의료진의 판단을 보조하는 단계로 올라왔습니다. 의료진의 사고 흐름을 따라오는 ‘동료형 AI’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이는 곧 병원의 의사결정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는 의미다. 정보 탐색 중심의 업무에서 해석과 판단 중심의 업무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이다.

94% 일치율이 의미하는 것,
‘신뢰 가능한 보조자’의 등장

일산병원에서 진행된 1단계 실증 결과는 기술의 현재 수준을 보여준다. 응급실 환자 분류 및 진단 추론에서 AI는 전문의 판단과 약 94%의 일치율을 기록했고, 의료 기록 정리에서도 86% 수준의 유사도를 보였다. 이 수치는 단순한 정확도를 넘어, AI가 의료진의 임상적 사고 과정에 상당 부분 접근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오 실장은 “이제 AI는 결과를 제시하는 수준을 지나 판단 과정 자체를 함께 구성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 수치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94%는 ‘가능성의 증거’이지 ‘완성의 지표’는 아닙니다. 의료에서는 단 1%의 오류도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검증과 통제가 필수적입니다.”

일산병원은 사용자 아닌 ‘기준 설계자’

이번 사업에서 일산병원의 역할은 단순한 테스트베드에 그치지 않는다. 개발과 동시에 실제 임상 환경에서 검증을 수행하며, 활용 기준과 안전 가이드라인을 함께 설계하고 있다.

“많은 기관이 AI를 ‘도입’하는 데 집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정의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사용 기준, 책임 범위, 검증 프로세스까지 포함해 하나의 표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는 과거 일산병원이 ‘건강보험 모델병원’으로서 수행해온 역할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이번에는 대상이 ‘의료 시스템’이 아니라 ‘AI 기반 의료 운영 체계’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결과적으로 일산병원은 ‘AI를 사용하는 병원’이 아니라 ‘AI 활용의 기준을 만드는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의료진·행정·환자: 전 영역의 업무 재구성

디지털 AI 전환은 특정 직군에 국한되지 않고 병원 내 모든 이해관계자의 업무 방식을 재구성한다. 의료진의 경우, 분산된 시스템(OCS, EMR, PACS 등)에 흩어진 정보를 직접 탐색하는 대신 AI가 통합 요약한 정보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반복적인 기록 업무는 자동화되고, 환자와의 상호작용과 고차원적 판단에 더 많은 시간이 배분된다.

행정 영역에서는 데이터 수집, 통계 분석, 보고서 작성 등 반복적·정형적 업무의 효율성이 크게 향상된다. AI가 초안을 생성하면, 담당자는 이를 검증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조로 전환된다. 환자 경험도 달라진다. 진료과 선택, 의료 정보 이해, 진료 과정 전반에서 개인 맞춤형 안내가 이루어지며, 병원 접근성이 실질적으로 낮아진다. 오 실장은 “결국 핵심은 시간의 재배분”이라고 강조했다. “AI가 시간을 벌어주고, 사람은 더 중요한 판단과 소통에 집중하게 됩니다.”

기술보다 어려운 과제:
‘현장 정착’과 ‘책임 구조’

오 실장은 기술 자체보다 더 중요한 과제로 ‘현장 적용’을 꼽았다.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의료진이 신뢰하지 않으면 쓰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맹신해도 위험합니다. 적절한 신뢰 수준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또한 책임 소재에 대한 명확한 기준 설정도 필수적이다. AI의 판단을 참고했을 때 최종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AI 사용이 허용되는지 등 제도적 정립이 병행되어야 한다. 일산병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계적 적용, 파일럿 테스트, 사용자 교육, 피드백 루프를 포함한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병원의 ‘운영체제’를 바꾸는 중

오성진 실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가 아닌 ‘운영체제(OS) 전환’에 비유했다.

“과거에는 병원이 사람 중심으로 돌아가고 시스템은 이를 보조했습니다. 이제는 AI가 정보를 통합하고, 사람은 그 위에서 판단을 내리는 구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기적 효율 개선을 넘어 병원의 경쟁력 자체를 재정의한다. 진료의 질, 운영 효율, 환자 경험 등 모든 것이 데이터 기반으로 재설계되기 때문이다. 오 실장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 사업은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앞으로 병원이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정의하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우리가 만들고 있습니다.”

디지털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병원 전환은 이미 시작됐다.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방향은 명확하다. 일산병원이 구축하는 이 모델은 단순한 사례를 넘어, 대한민국 의료의 다음 표준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