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식습관
가장 비싼 ‘공짜’ 처방
무엇을 먹느냐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그 선택은 우리의 몸을 바꾸고, 감정을 바꾸며, 결국 삶의 방향까지 바꾼다. 식습관은 가장 일상적인 행위이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한 건강 결정 요인이다. 이 글은 음식이 인간의 신체와 정신, 나아가 삶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양한 사례와 연구를 통해 살펴본다.
글 구승준(번역가·칼럼니스트)
인간의 몸을 망가뜨리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한 달이면 충분하다. 2004년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에서 감독 모건 스펄록(Morgan Spurlock)은 한 달 동안 하루 세 끼를 모두 패스트푸드로 먹는 실험을 시작한다. 규칙은 간단했다. 메뉴는 패스트푸드만 먹고 매장에서 권하는 ‘슈퍼사이즈’를 거절하지 않으며 특별한 운동은 하지 않는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났다. 몇 주 사이 체중은 약 11kg 증가했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급격히 상승했다. 특히 간 기능 수치가 위험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더 놀라운 변화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타났다. 그는 극심한 피로와 무기력, 집중력 저하를 경험하기 시작했고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으면 기분이 가라앉는 금단 증상까지 나타났다. 설탕과 지방이 결합된 음식이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해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한 달이 지났을 때 그의 몸은 망가졌고 실험이 끝난 뒤 정상적인 건강상태로 돌아오는 데는 거의 1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이 영화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패스트푸드의 위험성이 아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인간의 몸뿐 아니라 감정과 정신 상태까지 얼마나 빠르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였다.
식습관이 인간을 바꾼 역사적 사례
음식이 인간의 삶을 바꾼 사례는 역사에서도 발견된다. 영국 왕 헨리 8세의 삶은 그 극적인 예다. 젊은 시절의 헨리 8세는 키가 크고 운동을 좋아했으며 직접 기사 토너먼트에 참가할 정도로 활달했다. 당대 유럽 궁정에서도 보기 드문 체력을 가진 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중년 이후 그의 삶은 급격히 달라졌다. 토너먼트 경기 중 낙마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친 뒤 활동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동시에 식습관도 완전히 달라졌다.
궁정 기록에 따르면 당시 궁정의 주방에는 200명이 넘는 하녀가 일했다. 끼니마다 사슴고기, 멧돼지고기, 거위 요리 등 육류는 물론 달콤한 디저트도 빼놓지 않았다. 와인과 맥주는 당연히 함께 마셨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그의 하루 섭취 열량이 5,000kcal를 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결과는 분명했다. 그의 체중은 말년에 약 180kg까지 증가했다. 통풍, 당뇨, 심혈관질환이 뒤따랐고 만성 염증 때문에 다리 상처는 끝내 제대로 치유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성격 변화다. 젊은 시절의 그는 학문과 음악을 사랑하고 토론을 즐기던 군주였다. 그러나 건강이 악화되면서 점점 의심 많고 폭력적인 통치자로 변했다. 교황청이 카톨릭 신자인 아내와 이혼을 반대하자 교황청과 영원히 결별하고 아내까지 처형하여 종교의 역사를 바꾸었다. 몸이 변하자 마음도 변한 것이다.
음식과 약은 하나다
음식이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는 ‘음식이 곧 약이다(Let food be thy medicine)’라는 말을 남겼다. 동양에서도 약과 음식은 곧 하나라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전통이 있다. 기원전 2세기의 의학서 《황제내경》에서는 ‘먼저 음식으로 다스리고, 안 되면 약을 쓴다(先食療 後藥療)’라는 말이 있다. 식습관은 의학보다 더 오래되고 더 강력한 치유제였다.
현대 과학도 같은 결론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식단의 질이 정신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정리한다. 채소, 과일, 올리브유, 생선 중심의 지중해식 식단은 염증 반응을 줄이고 뇌 기능 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영국의학저널 <음식과 기분: 식단과 영양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 2020>(Food and mood: how do diet and nutrition affect mental wellbeing?, BMJ, 2020)
또한 다른 연구에서는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높은 사람들에게서 우울증 위험이 증가한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미국의학협회 <초가공식품과 미국 성인의 우울증 위험(Ultra-processed foods and risk of depression among US adults)>, JAMA Network Open, 2023]
음식은 단순히 몸을 구성하는 재료가 아니다.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바꾸는 생화학적 신호다.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장내 미생물 환경이 달라지고 그 변화는 다시 뇌와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풍요로운 시대의 새로운 질병
현대사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동시에 가장 위험한 식환경을 만들어냈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의 비만율은 1975년 이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세계보건기구 <비만과 과체중 2022(Obesity and Overweight)>, WHO, 2022].
특히 문제는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이다. 초가공식품섭취 비율이 높을수록 사망 위험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영국의학저널 <초가공식품 섭취와 전체 사망률의 연관성 2019>(Association between consumption of ultra-processed foods and all cause mortality, BMJ, 2019)]
또한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에서는 초가공 식단을 먹은 사람들이 자연 식단보다 하루 평균 약 500kcal를 더 섭취한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셀 메타볼리즘 <초가공 식단은 과잉 칼로리 섭취와 체중 증가를 유발한다 2019>(Ultra-Processed Diets Cause Excess Calorie Intake and Weight Gain, Cell Metabolism, 2019)]
현대인의 식습관 문제는 단순한 의지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뇌 보상 시스템을 강하게 자극하도록 설계된 식품 환경에서 만들어진 구조적 문제다. 설탕을 먹으면 뇌에서 코카인과 유사한 도파민이 나오는데, 강한 자극이 자주 반복되면 도파민 수용체가 감소하여 같은 만족을 위해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된다.
식탁에서 시작되는 작은 혁명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할까.
첫째, ‘3백 식품’을 줄이는 것이다. 백설탕, 백밀가루, 백미 같은 정제 탄수화물은 혈당을 급격히 상승시킨다. 같은 탄수화물이라도 현미와 보리, 귀리 같은 통곡물이 낫다.
둘째, 슬로푸드(slow food)를 선택하는 것이다. 자연에 가까운 식재료를 선택하자는 식문화다. 제철 채소와 과일, 통곡물, 콩류, 생선, 올리브유 같은 음식이 대표적이다.
셋째, 단백질 섭취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가공육 대신 자연육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햄과 소시지 같은 가공육을 인간에게 발암성이 있는 식품으로 분류했다. [국제암연구소 <가공육의 발암성 평가 2015>(IARC Monographs on the Evaluation of Carcinogenic Risks to Humans, 2015)]
넷째, 식탁의 절반을 채소로 채우는 것이다. 채소와 과일은 식이섬유와 항산화 물질을 공급하고 장내 미생물 환경을 개선한다.
다섯째, 천천히 먹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는 빠른 식사 속도와 비만 사이의 연관성을 보고했다. 포만감을 느끼는 신호가 뇌에 전달되기까지는 약 20분이 걸린다. [영국의학저널 <빠른 식사는 비만으로 이어진다 2006>(Eating Fast Leads to Obesity, BMJ, 2006)]
마지막으로 배고플 때 먹고 포만 직전에 멈추는 습관이다. 일본 오키나와 장수 문화에서 알려진 ‘하라 하치 부(腹八分)’ 원칙도 같은 생각을 담고 있다. 배의 80% 정도만 채우는 식사 방식이다.
가장 비싼 ‘공짜’ 처방
바른 식습관을 유지하는 데 따로 드는 비용은 없다. 독일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에르바하(Ludwig Feuerbach)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곧 자신이 먹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는 음식은 우리의 몸을 만들고 몸은 우리의 기분과 사고를 만들며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꾼다. 자세가 몸의 태도라면 식습관은 삶의 태도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선택이 수십 년 뒤 우리의 건강을 결정한다. 바른 식습관은 가장 비싼 공짜 처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