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을 위해
필요한 마음의 위생
머릿속에 떠오른 모든 생각을 믿지 않는 법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언제나 사실일까. 같은 일을 겪어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지고, 때로는 그 생각이 몸의 반응까지 바꾼다. 그렇다고 불안과 걱정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고, 떠오른 생각에 휩쓸리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몸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위생이 필요하듯 마음에도 생각을 살피고 다루는 ‘위생 습관’이 필요하다.
글 구승준(번역가·칼럼니스트)
2020년 의학계에서 흥미로운 실험 결과가 발표됐다.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스타틴을 복용하다 근육통 등 부작용 때문에 약을 중단했던 환자 60명에게 1년 동안 실제 스타틴, 스타틴과 똑같이 생긴 가짜 약, 아무것도 먹지 않는 기간을 무작위로 반복하게 했다. 환자들은 어느 달에 실제 약을 먹는지 알지 못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참가자들은 매일 자신이 느끼는 근육통이나 불편감 등 증상의 강도를 ‘전혀 없음’ 0점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증상’ 100점까지 평가했다. 이를 한 달 단위로 평균을 내자 아무것도 먹지 않은 기간에는 8.0점이었지만 스타틴을 먹은 기간에는 16.3점으로 높아졌다. 그런데 약효가 전혀 없는 가짜 약을 먹었을 때도 15.4점이었다. 실제 약과 가짜 약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
물론 이것이 스타틴에 실제 부작용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약을 먹으면 아플 수 있다’는 예상만으로도 실제 불편과 통증이 상당 부분 나타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정적인 기대가 증상을 일으키거나 악화하는 현상으로 의학에서는 이를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고 한다.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상황을 위험하다고 해석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이 긴장하며 호흡이 달라진다. 우리는 음식에 대해서는 위생을 따진다. 상한 음식은 버리고, 유통기한을 확인하며, 몸에 해로운 것을 너무 많이 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머릿속에 무엇을 집어넣고 무엇을 오래 붙잡아둘지에 대해서는 놀라울 만큼 무심하다. 생각도 방치하면 마음뿐 아니라 몸을 지치게 할 수 있다. 생각에도 위생이 필요하다.
생각이 들어오면
먼저 ‘사실’인지 ‘해석’인지 본다
누군가 약속에 20분 늦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나를 우습게 아는군’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무슨 일이 생겼나’라고 생각한다. 벌어진 사건은 똑같다. 그러나 첫 번째 사람에게는 분노가, 두 번째 사람에게는 걱정이 생긴다.
사건과 감정 사이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단계가 하나 있다. 해석이다. 뇌는 사건이 일어나면 거의 즉시 뜻을 붙인다. 무시당했다, 배신당했다, 손해를 봤다, 위험하다, 창피를 당했다는 판단이 붙으면서 감정과 몸의 반응이 뒤따른다. 문제는 이 과정이 너무 빨라서 우리는 해석을 사실로 착각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화가 치밀 때 무조건 ‘참아야지’라고 하는 것보다 더 유용한 질문이 있다.
‘지금 실제로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그것을 무슨 뜻으로 받아들였는가.’
‘말을 끊었다’는 사건과 ‘나를 무시했다’는 해석은 다르다. ‘답장이 없다’와 ‘나를 싫어한다’도 다르다. 이 둘을 구분하는 순간 감정과 행동 사이에 작은 공간이 생긴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의 매슈 리버먼 연구팀은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얼굴을 보여주면서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게 했을 때 편도체 반응이 감소하고 전전두피질 영역의 활동이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다. ‘화가 난다’, ‘모욕감을 느낀다’처럼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감정을 없애지는 않지만, 감정에 휩쓸리는 것과 감정을 바라보는 것 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그러므로 화가 날 때 필요한 것은 성인이 되라는 훈계가 아니다. 즉시 행동하지 않는 기술이다. 문자부터 보내지 않고, 전화부터 걸지 않고, 잠시 몸을 움직이거나 물을 마신 뒤 ‘지금 내 머릿속에서 무슨 판결이 내려졌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생각하지 말라는 순간, 흰 곰이 나타난다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는 참가자들에게 한 가지 이상한 주문을 했다.
“앞으로 5분 동안 흰곰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사람들은 오히려 흰곰을 계속 떠올렸다. 생각하지 않으려면 역설적으로 ‘내가 지금 흰곰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계속 감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연구에서도 특정 생각을 억누른 뒤 그 생각이 다시 증가하는 ‘반동 효과’가 확인됐다.
그래서 ‘걱정하지 말자’고 몰아붙이는 것이 오히려 걱정을 붙잡을 수 있다. 생각은 명령한다고 삭제되는 파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또 왔구나’라고 알아차린 뒤 다른 곳으로 주의를 옮기는 편이 낫다. 기도하거나 호흡을 세거나 조용히 걷는 것도 좋다. 목적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 생각을 반드시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익히는 것이다.
끝난 일도 생각 속에서는 끝나지 않는다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바쁜가 보다’ 하다가 나중에는 ‘혹시 내가 실수했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정보는 하나도 추가되지 않았는데 이야기는 점점 정교해진다. 이미 끝난 일을 계속 되씹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후에 누군가와 싸웠는데 밤늦도록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지’라며 머릿속에서 싸움을 계속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반복적 사고를 ‘반추(rumination)’라고 부른다.
반추 연구에서는 스트레스 직후 사건을 계속 곱씹는 상태가 코르티솔 반응 증가나 회복 지연과 연결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 메타분석에서는 급성 심리적 스트레스 뒤 여러 염증 관련 지표가 증가했다.
문제는 사건이 끝났는데도 머릿속의 재방송 때문에 몸의 경보가 계속 켜져있는 경우다. 이럴 때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과 ‘내가 추측하는 것’을 나눠적어보는 것이 좋다. 건강검진에서 재검을 권유받았다는 것은 사실이고 ‘큰 병일 것이다’는 추측이다. 머릿속에서는 두 가지가 섞이지만 글로 쓰면 분명해진다. 가능성이 사실로 발전하거나 승진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감정이 격해진 뒤에는 평소의 지혜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전 설계가 필요하다. 심리학에서 ‘실행 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는 ‘만약 X가 일어나면 나는 Y를 한다’고 미리 정하는 방식이다. 이런 ‘만약-그러면’ 계획은 단순한 목표보다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화가 치밀면 바로 답하지 않고 물 한 잔을 마신다’, ‘불안한 생각이 반복되면 검색부터 하지 않고 사실부터 적는다’라는 계획은, 감정이 찾아온 다음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감정이 찾아왔을 때 갈 길을 평소에 닦아두는 것이다.
바른 생각은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바른 생각’은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과 다르다. 암 검사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절대로 암이 아닐 거야’라고 믿으라고 하는 것도, ‘분명 암일 거야’라고 미리 절망하는 것도 정확한 생각은 아니다. 가장 바른 생각은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모른다’일 수 있다.
사업이 어려운데 ‘무조건 잘될 것이다’라고 되뇌는 것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외면하는 낙관은 현실을 과장하는 비관과 방향만 다를 뿐 같은 왜곡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암이나 당뇨병, 심혈관질환이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좋은 생각만으로 치료되는 것도 아니다. 생각은 약을 대신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현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 신경계가 얼마나 크고 오래 경보를 울릴지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른 생각의 반대말은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왜곡된 생각이다. 우리는 매일 이를 닦고 손을 씻는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처음 떠오른 해석을 곧바로 믿을지, 불편한 생각을 억지로 쫓아낼지, 이미 끝난 일을 몇 번이나 다시 곱씹을지도 하나의 생활습관이다. 생각의 위생은 좋은 생각만 골라 하는 것이 아니다. 불안해하고 화도 내며 걱정도 하되, 그 생각들이 제멋대로 몸의 운전대를 잡게 하지 않는 것이다.
바른 자세가 척추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라면, 바른 식습관은 몸에 불필요한 것을 넣지 않는 것이며, 바른 생활습관은 몸을 함부로 소모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른 생각은 현실에 없는 위험까지 만들어 몸에 계속 먹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입으로 무엇을 먹을지는 꽤 신중하게 고른다. 이제 머리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오래 씹고, 무엇을 제때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생각에도 위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