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아침마다 체중계에 오르는 사람이 많다. ‘어제 저녁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자책을 무한 반복한다.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체중에 민감하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다이어트란 무엇일까?
글 구승준(번역가·칼럼니스트)
임진왜란 당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이 한양을 점령했다. 조선군은 첩보를 통해 적의 식량 사정을 탐색했다. 조선군은 ‘한 달만 버티면 왜군이 군량이 떨어져 퇴각할 것’이라 판단하고 성 밖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왜군은 여전히 밥을 짓고 있었다. 이후 적진에서 발견된 밥그릇은 조선군의 그것보다 훨씬 작았다. 이를 보고 “이놈들이 오래 버티려 김치 종지에 밥을 먹었구나”라며 감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조선 후기의 문헌인 『쇄미록』과 『대전회통』 등에 따르면, 조선인은 하루 7되, 즉 약 1.3kg의 쌀을 먹었고, 일본인은 그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일본 측 기록에는 “조선인은 체격이 크고 힘이 세며 식사량도 두 배나 많다”는 표현도 남아 있다.
조선시대 한국인이 하루에 쌀 1.3kg을 먹었다는 사실은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오늘날 대부분의 식당에서 제공하는 밥 한 공기는 평균 160g, 세끼를 먹어도 480g에 불과하다. 그러나 관련 증거자료가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사람들이 쌀을 많이 먹은 데는 단백질 부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시 식단은 쌀밥이 주식이었고, 반찬은 김치, 국, 장아찌 등 채소류가 대부분이었다. 육류나 생선 등 동물성 단백질은 귀했으며, 소를 도축하는 것도 법으로 엄격히 제한됐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필요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했고, 이를 보충하려다 보니 탄수화물(쌀밥)을 더 많이 먹게 되었다. 이를 ‘단백질 지렛대 가설’이라고 부른다.
그런데도 살이 찌지 않았다. 조선시대 평민들은 하루 종일 밭을 갈고, 논을 매고, 장작을 패며, 물길을 오가야 했다. 이런 고강도 신체 활동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고, 섭취한 탄수화물이 체지방으로 축적되기 전에 대부분 소비되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많이 먹은 것은 식탐이 많아서가 아니라 살기 위한 생존 전략일 뿐이었다.
비만인이 ‘미래형 인간’이라고?
조선인들이 많이 먹었는데도 살이 찌지 않았다면 지금은 왜 비만인이 많아졌을까? 1962년 미국 유전학자 제임스 닐(James Neel)은 ‘절약 유전자 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류는 오랜 시간 반복되는 기근에 적응하기 위해 에너지를 지방으로 잘 저장하는 유전자를 갖게 되었고, 이런 유전자가 있는 사람이 어려운 시기에 더 잘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즉, 비만 소인은 과거에는 ‘생존형 인간’이었던 셈이다.
국내 신경인류학자 박한선 박사도 “허리에 붙은 살이 험난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의 결과”라고 밝히며, 비만이 진화적으로 유리한 형질임을 강조한 바 있다. 영국 역학자 제임스 바커(James Barker)는 ‘절약 표현형 가설(Thrifty Phenotype Hypothesis)’에서 태아 시절 영양이 부족하면 이후 환경이 풍요로워질 때 비만이 되기 쉽고, 이런 형질이 미래의 기근에 대비하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인류는 오랜 기간 ‘굶주림’에 적응해왔다. 쉽게 저장되는 지방은 생존 무기였다. 비만은 왕실 가문이나 귀족을 나타내는 신분증명서였다. 평민들은 하루 2끼를 먹었으나, 왕실에서는 하루 최소 5끼에서 많게는 8끼까지 먹었다. 귀족들도 하루 5끼를 먹었다. 당시에는 살이 찌는 것이 신분이 높음을 상징했고, 살찐 사람을 부러워하는 풍조까지 생겨났다. 신윤복의 <미인도>에 등장하는 인물도 오늘날 기준으로는 ‘비만녀’에 해당한다.
먹방 시대에 날씬하게 살기
2025년 현재,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에서 먹방(Mukbang)과 푸드포르노(Foodporn)가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먹방 유튜버들은 수백만~천만 명에 이르는 구독자를 보유하며, 단순히 음식을 먹는 모습을 넘어 ASMR, 챌린지, 문화적 이야기 등 다양한 콘텐츠로 진화하고 있다. 먹방은 한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확산됐으며, 각국의 언어와 음식 문화가 융합된 새로운 장르로 발전 중이다.
먹방이 인기 있는 심리적 배경에는 대리만족이 있다.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 건강 문제, 경제적 이유 등으로 원하는 만큼 먹지 못한다. 먹방을 보며 타인의 식사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얻는다. 이는 ‘미러뉴런(Mirror neuron, 거울신경)’의 작용으로, 남이 먹는 모습을 보면 뇌가 마치 자신이 먹는 것처럼 반응한다. 바삭한 소리, 쫄깃한 질감, 화려한 색감 등은 뇌의 도파민 분비를 자극해 쾌감을 준다.
현대 소비주의 문화는 우리에게 ‘맛있는 것’을 끊임없이 권한다. 미디어는 먹방, 쿡방, 다이어트 리얼리티 쇼 등으로 식욕을 자극한다. 한편, 다이어트 성공담과 ‘다이어트 영웅’의 탄생은 자기 관리의 미덕을 강조하며, ‘살을 빼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외모 담론을 강화한다. 이 과정에서 다이어트 실패에 대한 죄책감, 자기혐오, 우울감 등 심리적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2025년, 비만 치료제 ‘위고비(Wegovy)’가 대한민국을 강타했다. 한때는 다이어트의 최종 병기가 ‘의지’였지만, 이제는 주사 한 방으로 10kg이 빠졌다는 후기들이 쏟아진다. 위고비의 등장은 비만 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체중감량 성공담이 넘쳐나는 만큼, 급격한 체중감량 뒤에 남는 피부 늘어짐, 탈모, 위장장애 등 ‘포스트 위고비’ 시장까지 함께 커지고 있다. 이제 ‘살을 빼는 것’은 단순한 미용 문제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자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비만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비만은 ‘자기 관리 실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한다. 비만이 당뇨, 고혈압, 심혈관질환 등 각종 만성질환의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비만 낙인’에 대한 사회적 반성도 일고 있다.
대한비만학회는 “비만은 반복되고 재발하는 만성질환”이라며,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시선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살을 빼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밤마다 냉장고를 열고, 배가 부른데도 손을 멈출 수 없을까?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이 질문에 ‘감정적 섭식’과 ‘음식 중독’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스트레스와 불안, 외로움, 우울 같은 감정이 쾌락을 주는 음식으로 향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뇌의 보상회로가 활성화되고,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의 변화가 식욕을 더욱 자극한다.
“먹어도 계속 배고픈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여러분이 자제력이 없거나 의지가 약한 것은 절대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인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왜 먹는가?’라는 질문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처럼 ‘먹는 걸 멈출 수 없는’ 심리는 단순한 의지박약이 아니라, 뇌와 호르몬, 현대사회의 스트레스 환경이 만들어낸 복합적 결과다. 특히 현대인은 수면 부족, 과도한 업무, 인간관계 스트레스 등으로 만성피로에 시달리며, 이때마다 ‘음식’이 가장 간편한 위로가 된다. 2025년의 다이어트 트렌드는 ‘개인 맞춤형’과 ‘지속가능성’이다. 유전자 검사, 장내 미생물 분석 등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다이어트가 인기다. 플렉시테리언, 플래닛 베이스드 다이어트 등 환경을 고려한 식단도 주목받는다.
간헐적 단식, 마음챙김 식사 등 ‘억지로 참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중요하다. 위고비가 체중을 줄여줄 수는 있지만, 음식과 감정,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다이어트에서 진짜 승부는 ‘몇 kg을 뺐느냐’가 아니라, ‘내가 왜 먹는지, 무엇을 위해 살을 빼려 하는지’를 묻는 데서 시작된다.
이제는 다이어트가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돌보는 시간이어야 한다. 위고비 시대에도 인간의 식욕과 감정, 자기 자신과의 화해는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