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몸과 마음,

두 개의 근육으로 사는 법

흔히 우리는 젊음을 나이와 동일시한다. 그러나 실제로 삶을 들여다보면 그 단순한 도식은 무너진다. 마흔에도 여전히 활기차게 새로운 배움을 즐기며, 오십에도 여전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십 대임에도 이미 무기력과 피로에 찌들어 늙은 사람처럼 사는 이들이 있다. 젊음은 단순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지닌 힘이다.

구승준(번역가·칼럼니스트)

고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는 “인간의 나이는 그가 지닌 영혼의 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영혼이 여전히 살아 있고, 세계를 향한 호기심이 꺼지지 않는 한 인간은 언제든 젊다. 그러나 현실은 이 젊음을 지키기 어렵게 만든다. 사랑이 배신으로 변하고, 믿었던 사업이 무너지고, 몸은 예고 없이 병에 걸린다. 치통 하나에도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인간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고통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조건’이라고 단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젊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영양제를 먹고, 최신 건강법을 찾는다. 그러나 젊음을 늦추는 가장 근본적인 비결은 고통과 마주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근육을 기르는 데 있다.

고통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에서 비롯된다

고통은 언제나 외부에서 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시험을 앞둔 수험생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시험을 망치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 마음속에선 시험을 망친 후의 끔찍한 미래가 끊임없이 상영된다. 결국 불안 때문에 공부하지 못하고, 실제로 시험을 망친다. 사건보다 해석이 먼저 사람을 무너뜨린 것이다.

사기를 당한 사람도 그렇다. 그는 분노와 억울함에 휘둘려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며 울분을 토한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다. 현실의 문제해결보다 감정의 회로 속에서 맴돌다 결국 더 큰 손실을 입는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생각”이라고 했다. 인간이 겪는 고통은 실제보다 과장된 해석에서 증폭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뒤에서 조종하는 것이 바로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이다.

투쟁-도피 반응:
원시의 그림자가 현대를 지배하다

투쟁-도피 반응은 원시 인류가 맹수와 마주쳤을 때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본능적 시스템이다. 눈앞에 호랑이가 나타났을 때 심장은 쿵쾅거리고, 호흡은 가빠지고, 혈액은 소화기관에서 팔과 다리로 몰린다. 몸 전체가 순간적으로 전투나 도망에 최적화된다.

이 장치는 수십만 년 동안 인류의 생존을 보장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삶에는 호랑이가 없다. 대신 상사의 꾸중, 미래에 대한 불안, 출퇴근 지하철에서 겪는 몸싸움, 스마트폰 속 알림이 뇌에는 호랑이처럼 인식된다. 뇌는 현실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원시적 방식으로 반응한다.

투쟁 반응은 위협 앞에서 정면으로 맞서려는 반응이다. 몸은 즉각 전투 모드에 돌입한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얼굴은 붉어지며, 목소리는 높아진다. 원래는 맹수와 싸우기 위한 것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인간관계 속에서 불필요한 공격성으로 나타난다.

직장에서 상사가 보고서의 작은 오류를 지적했을 때, 마음은 그것을 생존의 위협처럼 받아들인다. 순간적으로 “왜 나만 지적하냐”는 말이 튀어나온다. 회의 석상에서 의견 차이가 생기면 토론을 넘어서 언쟁으로 치닫는다. 도로 위에서는 끼어든 차량에 창문을 열고 고함을 지른다. 모두 투쟁 반응이 일상에 침투한 모습이다. 투쟁 반응은 순간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관계를 해치고 신뢰를 무너뜨린다. 결국 생존이 아니라 고립으로 이어진다.

다른 갈래는 도피다. 뇌가 ‘싸우면 질 것이고 살아남으려면 달아나야 한다’고 판단할 때 도피 반응이 발동한다. 그러나 현대인의 도피는 들판을 달리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속으로 숨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해야 할 보고서를 미루고, 시험공부 대신 스마트폰 속 SNS를 무의식적으로 스크롤한다. ‘망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끝없는 망상으로 이어진다. 순간적으로 안도감을 주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불안으로 되돌아오며 자기혐오로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고대 인류가 덤불 속에 숨어 맹수를 피하던 행동과 다르지 않다. 단지 탈출구가 바뀌었을 뿐이다. 문제는 그 도피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다. 투쟁과 도피는 원래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으나 현대사회에서는 오히려 건강을 갉아먹는다. 투쟁은 불필요한 분노와 갈등으로, 도피는 망상과 시간 낭비로 나타난다.

하버드 의대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인 투쟁-도피 반응은 기억력 저하, 집중력 손실, 심혈관질환 위험 증가로 이어진다. 몸과 마음이 끊임없는 경계 상태에 놓이면 노화는 가속화된다. 원래는 생존을 보장하던 본능이 이제는 수명을 단축하는 역설이 된 것이다.

마음의 근육:
뇌의 회로를 다시 짓는 법

고통을 관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마음의 근육이다. 마음에는 실제 근육이 없지만, 뇌는 근육처럼 훈련된다. 신경세포는 반복된 경험에 따라 연결을 강화하거나 약화한다. 이것을 신경가소성이라 한다.

부정적 망상에 자주 빠지면 부정 회로가 단단해지고, 감사와 회복을 자주 훈련하면 긍정 회로가 강화된다. 결국 마음 근육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 명상, 감사 일기, 감정 관찰 훈련은 단순해 보이지만 뇌의 회로를 바꾸는 강력한 도구다. 미국심리학회는 하루 10분 명상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집중력과 감정 조절 능력을 높인다고 보고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가진 생각의 색깔을 띤다”고 했다. 마음 근육을 단련한다는 것은 자신을 어떤 색으로 물들일지 결정하는 일이다.

몸의 근육: 노화를 늦추는 확실한 방패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몸과 마음은 하나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다. 근육은 단순한 움직임의 장치가 아니다. 대사를 조절하고, 혈당을 안정화하며, 면역을 강화한다. 일본 노인보건의료센터 연구에 따르면 근육량이 많은 노인은 평균 5~7년 더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운동은 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많은 연구에서 유산소운동은 뇌혈류를 개선해 인지기능을 높이고, 근력운동은 엔도르핀과 성장호르몬을 분비해 기분을 편안하게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치매 발병 위험이 낮다는 것도 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허벅지 근육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크고 강한 근육이다. 연세대와 한국의학연구소 연구(30~79세 남녀 32만명 분석)에서, 허벅지 둘레가 1cm 감소할 때 남성은 당뇨병 위험이 8.3%, 여성은 9.6% 증가하는 상관관계가 확인되기도 했다. 허벅지가 약해지면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지고, 반대로 허벅지가 단단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낮아지고 활력이 넘친다.

종아리 근육은 흔히 ‘제2의 심장’이라 불린다. 종아리의 수축·이완 운동은 정맥혈을 심장으로 밀어 올려 혈액순환을 돕는다. 종아리가 튼튼하면 뇌혈류가 개선되어 집중력과 정신적 활력도 회복된다. 노년기에 종아리 근육이 빠르게 줄면 낙상 위험이 높아지고, 실제 노화 속도의 지표로 활용되기도 한다.

복근은 단순히 배를 만드는 미용 근육이 아니다. 복직근·복사근·복횡근은 내장기관의 지지대 역할을 하며 장기 처짐을 막는다. 특히 복횡근은 허리를 둘러싼 ‘코르셋’처럼 작동해 척추를 안정화하고 허리통증을 예방한다. 또한 복부 근육은 호흡에도 깊이 관여한다. 횡격막과 함께 작동하며 폐활량을 늘려주고, 호흡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스트레스 조절에 도움을 준다.

몸의 상태는 마음을 규정하고, 마음의 습관은 몸을 바꾼다. 몸 근육은 생존을 지켜주고, 마음 근육은 삶의 의미를 지켜준다. 투쟁-도피 본능은 여전히 우리를 흔들지만, 몸과 마음의 근육은 다시 현실로 발을 딛게 한다. 결국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 늙음 속에서도 젊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